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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고사성어 모음

[사자성어]함흥차사 (咸興差使) 뜻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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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은 지역이고 “차사”는 벼슬 이름입니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를 모시러 함흥에 갔다 돌아오지 않은 사신을 가리키는 말로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아주 없거나 또는 회답이 좀처럼 오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아빠와 아들

 

함흥차사의 뜻

 

咸: 다 함

興: 일어날 흥

差: 보낼 차

使: 사신 사

 

 

조선 건국 초기에 있었던 야사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사성어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유래를 가지고 있지요.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 의해 고려를 박살내고 조선을 건국하여 임금이 되었습니다.

태조는 두 부인의 사이에 8명을 아들을 두었으니 누구에게 임금 자리를 넘겨 주느냐로 태조는 머리가 아팠지요. 결국 1398년에 왕자의 난에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떠나게 되지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로부터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냈으나 이성계가 그 사신들을 죽이거나 잡아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한번 가면 깜깜무소식인 사람을 가리켜 함흥차사라고 합니다.

 

함흥차사의 유래

 


그런데 한사람이 용감히 “제가 함흥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나섰는데 그는 이성계와 오랫동안 친구 사이였던 박순(朴淳)이었습니다. 그러나 태종의 신임이 투터웠던터라 태종은 펄쩍 뛰었지만 그럼에도 박순이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태종은 어떨 수 없이 함흥으로 가도록 합니다.

 

 

 



어느 날 이성계가 대청에 올라 멀리 남쪽을 바라보니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데 자세히 보니 말에게는 망아지가 딸려 있었어요. 그런데 왠일인지 그 차사는 동구 밖에 망아지를 나무에 매어 놓고 오는 것이었어요. 망아지는 어미 말과 떨어지자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박순은 태조에게 "대왕마마 저 박순입니다.” 라고 인사를 건냅니다. 옆에있던 군사가 “지난번처럼 활을 쏠까요?”라고 말하자 “아닐세. 박순은 나와 오랜 친구가 아닌가! 여봐라, 문을 열어 줘라.”

박순이 들어오자 이성계가 반갑게 맞이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느새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다가 그런데 자네는 왜 동구 밖에다 망아지를 묶어 두고 어미 말만 타고 들어왔나?” 태조 이성계가 문득 생각난 듯 물어봅니다. 박순이 보셨습니까? 망아지가 어떻게 하고 있던가요? “울고불고 난리더군.”
“동물인 말도 부모와 떨어지면 저렇게 애타게 찾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이제 그만 노여움을 풀고 한양으로 돌아가시지요.” 박순이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그런 말 하려거든 그만 돌아가게나! 여기서 태어났으니, 여기서 죽겠네.” 이성계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왕 관


“제가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면 임금 뵐 낯이 없습니다.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박순이 고개를 깊이 숙이자 “내 어찌 자네를 죽일 수 있나 어서 돌아가시게.” 이성계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지요. 박순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를 모시고 있던 군사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저자도 다른 차사들처럼 죽여야 합니다. 전하께서 만드신 규칙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어기신다면 차사들이 또다시 올 것입니다.” 군인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한마디씩 합니다. "박순은 나의 오랜 친구이니 남쪽 용흥강을 건넜거든 죽이지 말고, 용흥강을 미처 건너지 못했으면 죽이도록 하거라.” 이성계는 박순이 용흥강을 건넜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박순 만큼은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군사들이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갔는데 용흥강에 도착해 보니 막 배가 출발하려는 순간 군사들은 박순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하필 그때 병을 얻어 느리게 이동하던 박순은 용흥강을 건너려다 안타깝게도 칼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친구를 잃은 상왕은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도 함흥에 차사는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고 해요. 이때부터 심부름을 시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을 때 ‘함흥차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무한대로 기다린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요? 태종은 아버지 태조에게 지은 죄가 있지만 아버지는 나중에 용서하고 옥새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 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한국사는 왕의 자리를 노리는 하극상도 많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많았지요? 권력에는 부모나 형제 혈육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우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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